騰沖의 민간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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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양(滎陽) 油紙우산

    騰沖縣 滎陽촌의 우산 제조업은 지금까지 200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9 대까지 전승하고 ‘紙撑子’이라고도 불립니다. 전에 騰越성의 관아에서 참고를 담당하던 정이공(鄭以公)은 거리에 구경하다가 西街에 油紙우산을 만들 줄 아는 張씨와 周씨를 알게 되어 그들에게서 솜씨를 배워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솜씨로 현지에서 油紙우산을 만들고 운남 서쪽 지역에 공급한 바가 있습니다. 현지에서 하카인(客家人)들이 많이 모여 살고 油紙우산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촌장인 정전국(鄭傳國)은 그 마을에서 80% 이상의 사람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솜씨로 油紙우산이나 엮어 짜는 수공예품을 만들 줄 알았는데 지금은 4 집만 油紙우산을 만들고 있으며 만들 줄 아는 5 명 중의 3명이 이미 고희를 넘었다고 하였습니다. 정가조(鄭家朝)네는 솜씨가 가장 뛰어나고 재료를 잘 따져 선택하며 도료를 천연 동유와 감즙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배합해야 됩니다. 하루에 한두 개만 만들 수 있고 우산이 튼튼하고 보기도 좋아 운남성 민존․민간 예술 예능인 3등상을 따 본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영루(鄭映樓)가 농사일이 바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서 만든 큰 油紙우산도 있습니다. 전에 상점들은 문 앞에서 큰 油紙우산을 펴 놓고 햇빛과 비를 막을 뿐더러 손님을 끌어 장사를 더 잘 할 수 있으니 이런 큰 油紙우산을 照鋪傘이라고도 불립니다.
    油紙우산은 雲華, 古永 등 지역에서 나온 맹종죽(孟宗竹)과 현지의 목재로 우산 손잡이와 우산살을 만들고 界頭에서 사온 構皮紙(꾸지나무의 껍질로 만든 종이)를 우산 겉표지로 덮어쓰고 ‘綠衣子’이라고 하는 동유나 壩子油를 바릅니다. 제작 절차는 우산살 깎기, 실 감기, 종이 도배하기, 감즙 바르기, 우산 접기, 말리기, 그림 그리기, 손잡이 달기, 동유 바르기, 캐노피 덮기, 손잡이 감기, 여밈끈 꿰기 등이 있습니다. 우산 하나를 만들려면 적어도 반일이 필요합니다.

예술가 劉永周의 피영(皮影)

류영주(劉永周), 호 文峰山人, 남, 한족, 1944년 12월 출생, 행년 61세, 騰沖縣 固東鎭 順利 劉家寨 二組의 사람. 이름난 민간 예술가.
劉永周의증조부부터 劉씨일족은 피영(皮影)의 창작과 연출에 종사하는지 이미 4대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피영 명문 대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75년에 증주부인 류등안(劉登岸), 류정삼(劉定三)의 증조부 류금두(劉金斗)는 그때 가장 훌륭한 피영 예는인 장노활(張老闊)과 이노백(李老白)을 스승으로 모시고 피영의 창작과 연출 기교를 배워 가지고 劉家寨 피영극단을 창설하였습니다. 그 후에 양가 조부부터 손자까지 3대인은 심혈을 기울여서 경영하고 부단히 연마하고 개선하여 창작이나 연출 기교가 나날로 성숙해졌습니다. 劉永周의 아버지인 劉定周 때는 劉家寨 피영이 매우 높은 예술의 경지에 달하고 騰冲피영극의 전승기에 들어갔습니 다. 운남성 서쪽 지역에서 공연을 많이 하여 각 민족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연출 기예에 있어서 곡조는 지역 사정을 주요시하고 현지에서 다채로운 민족․민간 곡조를 많이 결합하여 더 가공하고 다듬어 소리가 높고 낭랑하며 음률이 은은하고 열정적인 ‘西腔’ 예술 풍격으로 이루었습니다. 대사 중에서는 어떤 지역의 속담, 은어도 넣어 더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皮影 靠子(인물) 제작에 있어서 劉永周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을 지키면서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靠子의 구도와 착색을 더 완벽하게 하고 도안 조각을 더 정미하게 하며 전체 형식을 더 화려하고 엄밀하게 합니다. 다년간의 축적으로 劉家寨의 皮影 靠子는 頭靠 800여 개, 身靠 200여 개에 달하고 연출에 따라 다른 頭靠와 身靠를 조합시켜 새로운 靠子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靠子는 수많는 頭靠와 조화시켜 수많은 새로운 인물 형상으로 만들어져 각각 다른 연극의 연출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군의 휘장. 책상과 의자, 전당, 조방, 마차, 가마와 배, 무기, 말, 사절, 불당, 동물, 화초 등, 하늘이든 땅이든 물이든 존재하는 대로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靠子는 조각이 정교하고 이미지가 살아 있으며 사람별로 물건별로 다 다르고 구상이 독창성을 갖추며 형상이 과장하면서도 흥미로우니 높은 예술가치와 수장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수집가들은 명성을 흠모하여 靠子를 만들어 달라고 끝없이 찾아왔습니다.
    騰冲가 미얀마와 인접하는 변경 일대의 원시림에서 질이 단단하고 질기고 매우 긴 덩굴이 많이 납니다. 이런 덩굴은 외피가 반들거리고 매끈하며 탄성도 좋고 변변하지 않아도 큰몫을 할 수 있으니 藤蔑이라고 합니다. 藤蔑은 매우 좋은 천연적인 편직소재이라 騰冲 사람들은 그것으로 의자, 장롱 등 일상용구를 만들고 종류도 다양하고 오래도록 쓸 수 있어 옛날부터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서에 의하며 덩굴 엮기는 좋은 생활도구는 물론 생산 도구이나 전쟁 기재로도 널리 쓰일 수 있다고 합니다. 『삼국지』에 따라 藤甲軍(덩굴갑옷을 입은 군대)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藤甲이란 덩굴로 엮어 만든 갑옷이고 그것을 입으면 강을 건너도 물에 빠트리지 않고 축축하게 하지도 않고 칼이든 화살이든 다 상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전에 변경지역의 明光, 界頭, 古永 일대에서 많은 도로는 江河 이외에 거의 다 고대의 덩굴다리를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덩굴로 끌고 엮어 만든 덩굴다리는 그물과 같은데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여전히 그대로 있고 사람이 그 위에 걸어 다니면 흔들거립니다. 騰沖에서 덩굴은 널리 많이 쓰여 있기 때문에 옛날에 ‘藤越’ ‘藤川’이라는 이름은 흔히 쓰였 있었고 ‘덩굴이 많이 나서 이름을 지었다’ 라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藤’ 자는 명말청초까지 ‘騰’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덩굴 엮기

    이미 명성이 두루 알려져 있는 덩굴 엮기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지금 덩굴 엮기는 어디에 가든 이미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의자, 탁자, 책상 등 전통적인 제품은 물론 광주리, 바구니, 함, 상자, 화분 받침대, 책장, 심지어 거실과 책방의 가구 세트 등 다 있습니다. 정교하고 깔끔하며 우아하고 고풍스러우면서 시대적 특성을 조화시켜 실용성과 예술성이 뛰어납니다. 덩굴 엮기는 누추한 곳에 두어도 지나치지 않고 화려한 곳에 두어도 초라하지 않으니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다 쓸 수 있고 고상한 사람이든 속인이든 다 잘 어울립니다. 환경, 빈부, 지위와 상관없이 다 쓸 수 있으니 옛날부터 판로가 넓습니다.
마크업 언어: 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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